맛의 고장 강진, 2017 강진방문의 해 설정. 손님맞이 행정력 집중

다산정약용 선생의 혼이 깃든 남도답사1번지 전라남도 강진에는 정약용 선생의 유배지인 다산초당과 젊음을 불태울 수 있는 스릴과 낭만이 깃든 가우도 짚트랙 등 역사와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강진이다.

인터넷 “빛가람뉴스”에서는 독자들의 여행 길잡이를 돕기 위해 기획특집으로 녹색의 땅 전남 시.군 단위별 역사와 생활문화, 녹색의보고 전남이 지니고 있는 자연환경 등 삶의 가치를 공유 할 수 있도록 소개중인데 이번에는 그 네 번째로 금년을 방문의해로 선정 추진 중인 전라남도 강진군을 찾았다.

◆다산초당 ; 공직자가 마당이 취해야할 도리를 목민심서 책자에 담아 예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공직자의 지표를 제시하고 있는 다산초당, 정약용선생은 이곳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바다건너 유배중인 형님(정약천 藥泉)이 그리울 때면 완도방향을 보면서 그리움을 삭이기로 한곳이 바로 다산초당이다.

다산초당은 조선 실학자의 대가 다산 정약용 선생이 18년(1801~1818)간의 우배기간 중 10여년간 생활하며 후학을 양성하고 “목민심서”를 비롯 500여권의 책을 저술했던 조선실학의 산실이다

◆ 천년고찰 백련사; 강진군 도암면 백련사길 145번지 일대의 울창한 동백나무 숲길을 따라 올라가면 고즈럭하게 자리 잡고 있는 백련사, 대한불교 조계종 백련사는 신라 말에 창건되어 1211년 원묘대사에 의해 중창된 사찰로써 서민 불교운동이 한창이던 1236년 백련 결사 문을 발표하고 백련결사 운동을 주창하였으며, 고려 8국사와 조선 8대사를 배출한 명찰이다.(문헌참조/강진군)

한편,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진에 유배 내려와 백련사 인근 다산초당에서 유당전서 500권을 찬술했을 때에는 해남 대흥사 12edo 강백을 지낸 아암 혜장선사(1772~1811)가 백련사 주지로 계시면서 다산과 종교와 나이를 초월한 애틋한 우정을 교유한 사찰로 유명하며 백련사에는 다산 정약용선생이 기거하면서 저술활동을 펼쳤던 다산초당과 넓은 차밭, 천연기념물 제151호인 동백나무 숲 등이 그런 약사의 숨결을 간직한 채 남아 지금도 탐방객을 맞이하고 있다.

◆ 청춘을 부르고 있는 가고 싶은 섬, 가우도 ; 강진 만에 자리 잡고 있는 가고 싶은 섬 가우도는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망호에 속한 강진만의 8개 섬 가운데 유일한 유인도이며 1889년까지는 대구면에 속하다 뒤에 도암면에 속했으며, 1914년 행정 개편 시 도암면에 속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가우 도는 강진읍 보은 산이 소의 머리에 해당되고 섬의 생김새가 소(牛)의 멍에에 해당 된다하여 가우도(駕牛島)라 부르게 되었다. 한편 강진군은 이곳에 탕방 객에게 낭만과 스릴을 느낄 수 있도록 짚트랙(청자타워 25m, 짚트랙 973m)을 설치하여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영랑생가 ; 강진군 강진읍 영량생가길 15번지에 소재한 영랑생가는 영랑 김윤식선생의 생가로 김윤식 선생은 1903년 1월 16일 이곳에서 김종호의 2남 3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때에는 채준으로 불렀으나 윤식으로 개명하였으며 영랑은 아호인데 문단활동시에는 주로 이 아호를 사용했다.

영랑 선생은 1950년 9월 29일 작고하기까지 주옥같은 시 80여편을 발표하였는데 그중 60여편이 광복전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이곳에서 생활하던 시기에 쓴 작품이다.

영랑생가는 1948년 영랑이 서울로 이거한 후 몇 차례 전매 되었으나 1985년 강진군에서 매입하여 관리해 오고 있는데 안채는 일부 변형 되었던 것을 1992년에 원형으로 보수하였고, 문간채는 철거 되었던 것을 영랑 가족들의 고증을 얻어 1993년에 복원하였다.

생가에는 시의 소재가 되었던 샘, 동백나무, 장독대, 감나무 등이 남아 있으며 모란이 많이 심어져 있다.

◆전라병영성과 병영 돌담길 ; 전라병영성(全羅兵營城)은 조선 태종 17년(1417년)에 설치되어 고종 32년(1895년) 갑오경장까지 조선조 500여 년간 전라남도와 제주도를 포함한 53주 6진을 총괄한 육군의 총지휘부이다.

그러나 1894년 갑오농민전쟁(동학)을 맞아 병화로 소실되었고, 이어 1895년 갑오경장의 신제도에 의해 폐영되고 말았다. 병영성 성곽의 총 길이는 1,060m이며, 높이는 3.5m, 면적은 93.139㎡(28.175평)인데, 현재 사적 397호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대한민국 등록문화재 제264호인 병영마을 돌담길은 병영마을 옛 담장은 성남리에서 지로리까지 약 1.5㎞의 골목길을 따라 둘러져 있으며. 이 오래된 마을의 돌담길은 향촌마을의 아름다움과 정서를 고이 간직하고 있어 이를 잘 가꾸어 후손들에게 넘겨주고자 문화재청은 2006년 6월 19일 등록문화재로 등재하여 보존, 관리하고 있다.

한편. 이 골목은 전라병영성이 축조된 후 촌락이 형성되면서 만들어졌는데 담장이 크고 길다하여 예부터 ‘한골목’이라 불렀다

병영성 내의 당시 건물이나 유적은 소실되고 없으나 성곽은 뚜렷이 남아 있어, 그 역사적 의의를 고려하여 2010년까지 정비할 계획으로 현재 복원 중이다. 특히 병영성은 서양에 우리나라를 처음으로 소개했던 하멜이 1656년 강진 병영으로 유배되어 7년 동안 살면서 노역했던 곳으로서, 주변의 '하멜 기념관'과 함께 하멜 관련 역사문화 유적지로서의 역할도 크다.

한편, 병영면 소재에 시골의 정서를 기대로 간직하고 있는 돌담길이 있는데, 하멜이 머물렀던 1656년부터 7년여 동안 하멜일행이 병영에 머무는 동안 전수한 돌담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멜기념관 ; 강진군 병영면 명성로 180번지에 소재한 하멜기념관은 하멜기념관은 우리나라를 서양에 최초로 알린『하멜보고서』의 저자 헨드릭 하멜(Hendric Hamel)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고, 강진과 네덜란드 호르큼 시와의 활발한 문화적 교류를 위해 개관하였다.

타원형의 목조건축으로 지어진 왼쪽의 전시관은 하멜이 표착한 남도의 섬을 상징하며, 오른쪽 각진 형태의 건물은 망망대해에 표류한 조난선 스페르베르(Sperwer)호를 상징한다. 전시실은 『하멜보고서』를 비롯하여 하멜의 생애, 17세기 조선과 네덜란드의 사회·문화·역사적 상황, 그리고 강진군과 네덜란드 호르큼 시의 자매결연 등 각 주제별로 감상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하멜기념관은 100여 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으며, 그 중 70여 점의 유물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하멜기념관은 하멜의 조선 표착의 역사적 의미 및 17세기 국제 교류사의 조사연구, 유물 전시를 통한 교육, 나아가 한국·네덜란드 간의 문화적 교류 증대를 위해 지역 전문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밖에도 남도답사1번지 강진에는 강진군 대구면 청자촌길 33번지에 소재한 고려청자의 역사를 재현 전시하고 있는 고려청자박물관, 신선한 횟감과 생선을 맛 볼수 있는 마량 항, 그리고 월출산 천황봉(天皇峰)과 구정봉(九井峰)을 좌우에 두고 남쪽에 자리 잡고 있는 천년 고찰 강진 무위사(無爲寺), 군동 남미륵사,  금곡사, 전남 강진군 옴천면 장강로 1445-14번지에 자리 잡고 있는 선각총림 강진 옴천사는 창건 20여 년 동안 정암 스님이 3000기의 돌탑을 완성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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