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12월 7일 미쓰비시에 동원된 광주전남 출신 6명 어린 소녀들 숨져

“친구들이여 머나 먼 하늘나라에 쓸쓸한 나날을 잠들고 있겠지요. 세월은 유수와 같이 흘러 67년이 지나는군요. 무슨 말을 먼저 할지 눈물만 납니다...”

‘일본에 가면 돈도 벌고 중학교도 보내준다’는 말에 속에 13살 어린 나이에 미쓰비시 군수회사에 끌려간 양금덕 할머니가 1944년 12월 도난카이 지진에 숨진 동료 친구들에게 67년 만에 부치는 눈물의 편지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양금덕 할머니 등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에 동원된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 지진 희생자 유족 등과 함께 오는 4일(일) 오전 일본 나고야에서 일본 시민단체와 함께 도난카이(東南海) 지진( 1944년 12월 7일 발생) 희생자 추도비 이설 제막식에 참여할 예정이다.   도난카이(東南海) 대지진은 1944년 12월 7일 오후 1시 36분 경 아이치현 일대에서 발생했다.

일제강점기인 1944년 5월경 ‘여자근로정신대’란 이름으로 일본 군수업체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제작소로 끌려가 강제노역 중이던 광주전남(약 150명), 대전충남(약 150명) 출신의 어린 소녀들은, 당시 공장 건물을 빠져 나오는 과정에서 일본인 51명과 함께 6명이 숨지고 말았다. 6명의 희생자들은 모두 광주전남 출신(목포 2명, 나주 2명, 광주 1명, 영암 1명)이었다.

당시 지진 희생자들을 위한 추도비는 지난날 침략전쟁을 참회하는 일본의 양심적 시민들에 의해 1988년 건립됐다.

당시 고등학교 역사교사였던 다카하시 마코도(高橋信), 고이데 유타카(小出裕) 씨 등은 패전(敗戰) 후 미쓰비시중공업이 미 연합군에 의해 숨진 일본인 폭격 희생자 등의 추모비를 건립하면서 유독 한반도에서 끌려온 지진 희생자들의 사건을 감춰오고, 희생자명부에서도 이름을 일부러 누락시켜 온 사실을 발견하고, 부끄러움을 느낀 나머지 본격적인 진상규명 활동에 돌입했다.

이들은 이후 나고야의 양심적 시민들의 성금을 모아, 사건발생 44년이 지난 1988년 12월 도난카이 대지진 사건 발생 일에 맞춰 피해자들이 강제노역을 한 옛 미쓰비시중공업 공장 터에 일본인 및 한반도에서 강제동원 돼 숨진 희생자들의 넋을 추모하기 위한 추도비를 건립한 바 있다.

원래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가 운영된 부지는 ㈜日淸紡績 소유였는데,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정부에 의해 강제로 국가에 수용돼 미쓰비시중공업이 항공기를 만드는 군수공장으로 사용되어 왔었다.

그러나 뒤늦게 국가로부터 원래의 땅을 회수한 ㈜日淸紡績이 최근 경영난으로 부지를 매각하게 됨으로써 부득이 추도비를 이전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한편 일본 현지에는 재일동포나 일본 시민단체, 종교시설 등에서 일제 강제 연행 희생자들의 넋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추도비 등이 있지만, 구체적으로 한국인 희생자의 구체적 이름까지 새겨 기록한 것은 이 추도비가 유일하다. 특히 조선여자근로정신대 희생자 추도비는 일제 강제연행과 인권유린의 역사적 사실을 후세에 남기는 의미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날 추도비 이전 제막식은 경과보고, 유족 대표 추도사, 고인 친구 추도사, 한국 대표 인사말, 묵도, 헌화 등의 순으로 진행되며,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반전 평화의 결의를 담아 “회한과 격분의 현장에서 오늘 우리가 가야할 길을 다시 묻는다”라는 글귀를 새긴 표지석을 세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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