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가는 길 힘들어도 사찰에 도착하면 탁 트인 시야가 반겨

사월초파일 (석가탄신일 / 四月初八日] 불교의 개조(開祖)인 석가모니(釋迦牟尼)의 탄생일(부처님 오신날 5월 14일)을 앞두고 찾아간 청량사(명승 제23호), 경상북도 봉화군 명호면 북곡리 깊은 산 계곡에 자리 잡고 있는 맑고 서늘한 청량사(淸凉寺)가(주지스님 ; 지현스님) 산등성이 가까이 고즈럭하게 속세를 내려다보고 있다.

깊은 산 계곡 길을 따라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거친 숨소리를 내뱄으며 올라가는 가파른 길, 쉬엄쉬엄 올라가는 2Km이상의 길을 걸으면 청량산 청량사를 만날 수 있다.

청량산은 해발 800m 내외의 12개 바위 봉우리와 기암괴석이 아름다운 것으로 유명하다 중생대 백악기에 퇴적된 역암. 사암. 이암 층이 융기. 풍화. 차별침식 등을 거치면서 다양한 지옇이 형성되어 경관이 아름다운 곳이다.

조선 후시 실학자 이중환은 “택지리”에서 청량산을 백두개단의 8개 명산 이외에 대산을 벗어난 4대 명산 중 하나로 보았다.

또한, 퇴계 이황이 이곳의 경치를 사랑했다 하여 유교와 퇴계를 숭상하는 선비들이 즐겨 찾는 유고의 순례지이기도 했다.

 량산에는 고려 말 공민완이 난리를 피하여 머물렀다고 하는 궁궐의 터와 요효. 의상. 김생. 최치원 등과 관련된 장소 등이 남아 있으며, 경관이 아름답고 학술적. 역사적 가치로 높아 한국의 대표적 명승지로 평가된 곳이다.

청량사 유래를 살펴보면 청량산에는 원효대사가 우물을 파 즐겨 마셨다는 원효정과 의상대사가 수도했다는 의상봉, 의상대라는 명칭이 남아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청량사를 중심으로 크고 작은 33개의 암자가 있어서 당시 신라불교의 요함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청량사는 16국사의 끝 스님인 법장 고봉선사(1351~1428)에 의해 중창된 고찰이며 본전(本殿)은 유리보전(琉璃寶殿)이며, 금탑봉 아래 웅진전(熊眞殿)은 683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7호로 지정된 유리보전은 동방 유리광 세계를 다스리는 약사여래를 모신 전각이라는 뜻으로, 법당 안에는 약사여래부처님을 중심을 좌측에 지장보살 우측에 문수보살이 모셔져 있다.

약사여래 부처님은 특이하게도 종이재질을 이용한 지불(紙佛)로서, 이곳에서 지극정성으로 기원하며 병이 치유되고 소원의 성취의 영험이 있는 약사도량이다.

한편, 원효대사가 청량사를 창건을 위해 의상대사와 함께 힘을 쏱고 있을 때 하루는 절 아랫마을에 내려가게 되었다. 논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논에서 일하는 농부를 만났는데 마침 농부가 소를 데리고 논을 갈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소의 뿔이 셋이나 달려 있는 게 아닌가? 하지만 이 뿔 셋 달린 소는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농부의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날뛰고 있었다. 이 때 원효대사가 농부에게 다가가 이 소를 절에 시주 하는 게 어떻겠냐고 권하니 농부는 흔쾌히 이 뿔 셋 달린 소를 절에 시주하겠다고 하였다.

원효대사는 농부에게 소를 건네받아 절로 돌아왔는데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제멋대로 날뛰던 소가 신기하게도 절에 온 이후로는 고분고분하게 말을 잘 듣는 것이었다. 소는 청량사를 짓는데 필요한 재목이며 여러 가지 물건들을 밤 낮 없이 운반하고는 준공을 하루 남겨놓고 생(生)을 마쳤는데 이 소는 “지장보살”의 화신이었던 것이다.

원효대사는 이 소를 지금의 삼각우송자리에 묻었는데 그 곳에서 가지가 셋인 소나무가 자라 후손 사람들이 이 소나무를 “삼각우송“이라하고 이 소의 무덤을 ”삼각우총“이라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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