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불가역적 해결 합의는 피해자 명예에 대한 부관참시 법적 책임 회피,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 해결에 더 큰 장애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을 지난 29일 한일 양국은 한일외교장관 회담을 통한 합의안 발표에 대해 성명을 발표하고 과연 이런 식의 합의안이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상처가 치유될 것이라고 생각했는가? 물었다.

[성명서 전문] 28일 한일 양국은 한일외교장관 회담을 통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합의안을 발표했다. 아울러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한일관계 개선과 대승적 견지에서 국민의 이해를 구했다.

오히려 박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박 대통령은, “위안부 피해자분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상처가 치유되는 방향으로 해결되어야 한다는 정부의 확고한 원칙을 지켜왔다”는데, 박 대통령은 과연 이런 식의 합의안이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상처가 치유될 것이라고 생각했는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근로정신대, 강제 징용 등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와 결코 무관하지 않는 문제다. 따라서 이번 해결 방식은 향후 전반적인 강제 동원 문제 해결에 있어서도 중요한 선례를 남긴다는 점에서 중요한 시험대였다.

결과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대사관 앞에서 25년 동안 비바람과 맞서서 찾으려 했던 명예회복과는 전혀 상관없는 굴욕적 결과였을 뿐 아니라, 다른 강제 동원 피해자들의 문제 해결마저 어렵게 만드는 안 좋은 선례를 남기고 말았다.

2005년 한국정부는 한일회담 문서공개 후속대책 관련 민관공동위원회를 개최하고 일제 피해자 문제와 관련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결론적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일본정부・군 등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청구권협정에 의해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고, 일본정부의 법적 책임이 남아 있다는 것이었다. 원폭피해자, 사할린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이러한 연장선에서 헌법재판소는 2011.8.30일 한국정부가 일본정부와 한일청구권 문제에 대해 입장이 엇갈리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음에 따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원폭피해자들이 누려야 할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한국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위헌 결정을 내려, 이 위헌 상황을 해소하기 위한 차원에서 일본정부를 상대로 지금껏 협상에 임해 왔던 것이다.

이런 역사적 맥락과 배경에서 볼 때 이번 결과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다. 일본 측은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로서,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는데, 일본정부가 통감한다는 ‘책임’이 과연 어떤 ‘책임’인지 그 성격이 불분명한 그야말로 이상한 책임이 되고 말았다.

아니나 다를까 기시다 외무상은 하루도 지나지 않아 “법적 책임은 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해 마무리됐던 것”이라며 이번 합의는 “국가 배상이 아니다”고 딴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강조하지만, 도의적 책임이 남아있는 문제는 도의적 차원에서 해결하고, 법적 책임이 남아있는 문제는 법적 책임으로 해결하는 것이 상식이고 원칙이여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법적 책임을 져야 할 사안을 마음대로 도의적 차원으로 해결하도록 둔갑시켜 주는 것이 말이 되는가!

특히, 일본정부가 밝힌 조치를 착실히 실시한다 것을 전제로 하긴 했지만, 이번 발표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하고, ‘향후 이 문제에 대한 상호 비난・비판을 자제’하기로 약속한 것은 앞뒤가 바뀌어도 한참 바뀐 것이다.

백번 사죄가 부족하다면 백 한번 사죄하는 것이 진정한 사죄의 태도라 할 때, 재론의 소지를 차단하는 조건에서의 조건부 사죄는 세상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해괴망측한 협상이자, 오히려 도둑이 큰소리치며 매를 드는 것과 같은 외교 참사의 전형이다.

한 마디로 박정희 대통령이 1965년 무상 3억 달러에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피 값을 맞바꾸려 했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빼앗긴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을 되찾기는커녕 오히려 다시 한 번 부관참시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번 문제는 근로정신대, 일제 징용 피해자들의 문제 해결에도 일본정부에 잘못된 판단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고 있다.

우선 일본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만 해결하면 모든 일제 과거사와 관련한 문제가 종결되는 것처럼 주장하고 있지만 이건 착각이다.

지난 23일 헌법재판소가 현재 한국정부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지급하는 미수금 지원금의 성격에 대해, 법적 보상 차원이 아니라 시혜적 차원에서 지급한 것으로 밝힌 것, 즉, 한국정부가 피해자들에게 1엔단 2,000원씩 환산해 지급하는 지원금은 시혜적 차원이기 때문에 하는 것으로 지원금 산정기준이 설령 현재의 화폐가치나 물가 변동률 등을 감안하지 못한 결과라 하더라도 헌법을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한 점은, 궁극적인 보상 책임이 일본정부에 있다는 것이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강제동원 문제 역시 다르지 않다. 2012년 5.24 대법원 파기 환송 사건의 취지나, 이후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일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 재판에서 일본기업에 대한 배상 판결을 명령한 것 역시 65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강제동원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고, 개인청구권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 사법부의 거듭된 입장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정부는 일본정부가 아직까지 보관하고 있는 공탁금, 지금도 피해자들의 청구에 따라 지급하고 있는 후생연금 수당,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소송 문제에 대해 애써 외면하거나 거론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눈치다.

그래서다. 일본정부에 법적 책임이 남아있다고 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마저도 법적 책임을 묻지 못하고 유야무야 넘어가는 판이니, 아예 스스로 언급하기조차 부담스러워하는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 해결은 얼마나 진지하고 무게 있게 받아들일지 우려가 적지 않다.

결과적으로 이번 협상을 통해 향후 일제 강제동원 문제와 관련해 일본정부에게 또 다시 잘못된 판단을 주게 될 가능성이 크다. 간단히 말해 한일청구권협정에 포함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일본정부에 법적 책임이 남아있다고 한국정부가 줄곳 주장해왔던 문제까지 법적 책임을 면제받은 마당에 다른 문제들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일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강조한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 문제는 이미 양국 사법부 결정이 나와 있다. 문제가 이렇게 꼬이고 갈등이 해소되기는커녕 재발하는 이유 또한 삼권 분립의 법치국가인 한일 양국이 법적인 해결방식이 아닌 정략적이고 변칙적인 방법으로 답을 찾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일본정부는 한일회담에서 무엇이 해결되고 무엇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는지를 알수 있도록 관련 문서를 전면 공개하고 2007.4.27. 최고재판소 판결 취지를 따르면 된다.

한국정부 역시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굴욕적 협상을 당장 걷어치우고 헌법재판소와 사법부 판결 취지에 따라 당당하게 외교적 교섭을 시작하라.

2015년 12월 29일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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