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공연 / 2015. 12. 29(화) 오후 6시 순천대 70주년 기념관 우석홀 / 2회 공연 / 2015. 12. 30(수) 오후 4시 고흥문화회관 김연수실

사위어 죽어가던 남도의 판소리와 귀한 가락들을 거의 혼자서 안간힘 다해 되살려낸 천재 귀명창 앵보 한창기 선생(1936~1997)이 고향 땅에 돌아온다. 탄신 80주년이다.

혁신적인 잡지 ‘뿌리 깊은 나무’와 ‘샘이 깊은 물’로 박정희 전두환 정권과 맞짱 뜬 뚝심의 언론인이자 독특한 시각의 저술가였고, 세상에서 제일 비싼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세상에서 제일 많이 판 세일즈 세계의 ‘영원한 전설’이며, 잘 나가는 문화상품의 개발자이기도 했던 그의 본디는 ‘우리 것을 깐깐하게 사랑한 문화인’이었다.

순천중 광주고 서울법대를 다니고 ‘책장사’가 된 그는 보성군 벌교읍 고읍리 출신이다. 어려서 늘 징징댔다고 붙은 별명 ‘앵보’를 필명으로 쓴다. 남도 땅과 사람들의 전통과 예술, 꾸밈없는 언어가 보듬은 가치를 확신하고 출판문화사업에 뛰어든다. 차(茶)와 다기(茶器), 옹기와 반상기 등 최고 명품을 지어낸다. 그가 지어낸 명품들만큼 자신도 명인(名人)의 삶을 짓는다.

그의 이런 삶이 남긴 명품과 그가 수집한 고고학적, 역사적 가치 높은 고미술품 등은 순천의 낙안성 자락에 자리 잡았다. 순천시립 뿌리깊은나무박물관이 그것이다. 한창기의 넋이 남도 고향 땅에 내려앉은 것이다.

문화의 시대, 우리 고장이 세상의 풍류에 끼친 거대한 흔적이 차츰 또렷해지고 있다. 이 여명(黎明)을 끌어낸 현대의 인물 중 한 거목(巨木)인 앵보 한창기의 삶과 꿈을 순천의 젊은 풍류그룹 ‘퓨전국악 잽이’(대표 김경선)가 박인규 전 KBS 프로듀서를 객원 연출가로 초대하여 처음 관중들의 시선 안으로 불러낸다.

그의 여러 모습들이 정교하게 편집된 영상을 배경으로 ‘샘이 깊은 물’ 창간호 표지 미인도의 무희(舞姬)가 남도 땅을 늘 건너다봤던 천재 문화인 한창기의 철학을 춤으로 보여준다. 전통을 지향한 꽃상여와 상여소리를 엄정히 재현한다. 앵보 선생은 자신의 ‘퇴장’인 장례를 깐깐하게 디자인하고, 그렇게 아름답게 고향 언덕에 묻혔다. 그 몇 장면이 무대에 오르는 것이다.

우리 전통의 생활과 문화가 낡고 추하고 부끄러운 것으로 취급받던 시절이었다. 비록 어둡고 엄혹한 시대를 살았어도, 그는 전통문화와 전통예술이 주는 설렘을 늘 잃지 않았다. 그의 문장은 앵보 다운 깐깐함도 빛나지만, 늘 설레며 전통문화의 부활을 꿈꾼 문화인이라서) 더 아름답다. 우리가 그를 잃거나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공연의 의의 - 왜 지금 남도의 현대사는 한창기를 부르는가?  - 앵보 한창기 80년만의 귀향 -

까탈스런 궁리와 과감한 투자로 기억의 저편으로 사위어가던 판소리를 번듯하게 일으켜 세워낸 풍류의 거인 한창기(1932~1997)를 이제 그가 일러준 가락으로 남도가 불러내자. ‘앵보’는 그의 필명이자 어려서 징징거리기 잘 했대서 붙은 아명이다.

한창기는 잡지 ‘뿌리깊은 나무’ ‘샘이 깊은 물’과 ‘민중 자서전’ ‘한국의 발견’ 등 독특하고 향기 높은 저작물을 펴낸 뛰어난 문필가이자 ‘한국브리태니커’의 사장을 지낸 문화사업가다. 우리의 맛나고 향기 짙은 차 문화와 다기, 백자, 옹기, 유기 등 생활문화를 재건했다. 간송 전형필에도 견줄만한 문화유산 컬렉터이기도 했다.

‘한창기가 없었다면’이란 가설은 우리 민족의 전통문화 소실이다. 그러나 서울사람들은 애타게 못 잊어하는 그를 정작 고향은 모르고 있다. 그의 삶이 그려낸 흔적은 그 자체로 문화다. 다행히 낙안 너른 뜰의 ‘뿌리깊은나무 박물관’으로 그의 넋이 내려앉았다.

낙안의 품에서 나서 순천과 광주의 기운으로 잔뼈 키운 그는 서울에서 마침내 세계와 만난다. 거기서 이녁 고향집 툇마루에 켜켜로 찌든 기억들이 물질문명에 함몰하던 인격상실의 도시를 치유하고 나아가 민족를 살릴 마음자리의 본디임을 안다.

이 서울법대 출신의 멋과 맛을 향한 일탈과 방랑의 여정은 21세기 대한민국과 남도의 땅과 사람들에게 어떤 뜻이 있는가?

1백회에 걸친 판소리 다섯마당 완창공연은 이미 우리 문화사의 신화다. 그는 판소리를 녹음하면서 내역과 가사를 채록하고 영어로도 함께 출판한다. 여러 산조와 민요, 강강술래 등이 그의 어깨 힘으로 기사회생한다. 61세 삶을 마무리하며 한창기는 이녁의 장례를 영성 높고 품격 있는 이별의 의례로 설계한다. 그리고 그가 디자인한대로 꽃상여 타고 고향땅에 묻힌다.

그가 일깨워준 마음과 소리로 남도 구석구석의 풍류를 되새겨, 잊고 있었던 우리 남도의 낙낙한 인심과 흥을 살려내자. 우리 각각의 마음 깊숙이 숨어있는 너그러움을 회복하고 자랑스럽게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공유하는 기회가 될 터다.

이 기획은 예인 공옥진과 함께 현대사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남도 큰 인물 중 한 사람인 한창기를 우뚝 세우고 그가 거둔 성과들의 윤곽과 내실을 공연으로 살피는 일이다. 그의 삶과 죽음의 여러 측면은 기품 넘치면서도 흥미롭다. 그가 남긴 여러 에피소드는 오래 회자되는 문화동네의 양념이다. 이를 영상과 음악으로 새롭게 해석한다.

순천의 ‘퓨전국악 잽이’(대표 김경선)가 전통과 민속부문에 밝은 서울의 제작자 박인규(전 한국방송 PD·남추문화재단 설립추진위원장)와 한창기를 오래 톺아온 언론인 작가 등 서울과 지방의 여러 ‘한창기 전문가’들과 함께 힘을 모았다. 박 피디는 이곳 낙안 출신이다. 또 남도의 지식인그룹 무등공부방이 힘을 보탰다.

전남 일원에서 벌일 장르융합공연인 이 ‘앵보 한창기-80년만의 귀향’은 여러 도민들이 독특하고 자랑스런 남도사람 한창기와 그의 ‘맛과 멋, 소리’에 젖어들게 해 모든 세대가 함께 떠들썩하게 즐기고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통찰을 얻게 하는 것을 의도로 삼는다.

한창기를 아는 일은 곧 남도의 자랑찬 문화의 핵심과 마주하는 일이다. 몰랐기에 그의 존재, 우리 (남도)문화 등에 관한 자랑스러움이 우리에게는 없거나 크게 부족했던 것이다. 한창기를 재미있게 알리는 공연은 그래서 교육의 효과까지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한창기 ‘다시 보기’ 또는 ‘제대로 보기’는 우리 현대사에서 우리 고유의 문화가 어떤 역사를 겪었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한창기가 추켜든 그 ‘문화’들이 한국의 것이면서 곧 남도 마음의 고갱이였던 점을 지적한다. 곧 남도의 정신이 우리 민족에게 어떤 의미인지, 어떻게 작동할 것인지를 짐작하게 한다.
우리 국토, 땅과 사람들의 진정한 화해의 시발점은 이런 풍류가 아닐지?

이 공연 작업은 한창기를 여러 면으로 톺아 우리의 기준 중의 하나로 삼는 일이다. 남도 땅과 사람들에게 한창기가 바로 세워지는 첫 상징과도 같은 이 공연은 앞으로 한창기와 관련한 여러 기획의 계기가 되고 젊은 세대들에게 큰 희망의 등대가 될 것이다.

우리 전통예술의 바른 전승에도 실질적으로 기여하리라 기대한다. 이 공연과 연결될 ‘한창기 공부’ ‘전통예술 공부’ 등 여러 의욕적인 후속 프로그램에 큰 힘이 될 기획인 것이다.

아울러 텍스트와 함께 제시되는 영상과 몸짓, 소리는 새롭게 우리 문화의 일원이 되고 있는 여러 외국 신 도민들과 그 2세들에게 남도의 속 깊은 정서를 심어주고 혼연일체의 기쁜 경험을 하게 하는 기회를 줄 것으로 예측하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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