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전 의원, 앞으로 걸어갈 미래도 결국 광주와 함께 / 역사의 제일 큰 물줄기를 이루는 당 대표

전남 화순에서 태어나 광주진흥고를 졸업한, 이한열 열사의 33주기 기일이었습니다. 한열이 앞에 부끄럽지 않게 정치하겠습니다. ‘광주 정신’에 따라 뚜벅뚜벅 가겠습니다.

▲ 광주를 찾아 출마선언 전 기자 간담회를 하고 있는 김부겸 전 의원
▲ 광주를 찾아 출마선언 전 기자 간담회를 하고 있는 김부겸 전 의원

김부겸 전의원(전, 행자부장관)은 7일 오전 10시 20분경 광주광역시의회 브리핑룸에서 갖은 기자 간담회를 통해 이같이 밝히면서, 오는 8월 실시되는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선거에 출마를 선언할 예정이라고 했다.

당 대표 출마를 마음먹은 후 처음 광주를 찾은 김부겸 전의원은 공식 당대표 출마선언은 오는 9일(목요일) 민주당 중앙당사에서  공식 출마 선언을 할 예정이라 면서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선의 근원인 광주였다. 면서 당대표를 출마한 저로서도 무거운 책임의식을 갖고 이곳을 찾았다고 했다.

김 전 의원은 “역사의 제일 큰 물줄기를 이루는 당 대표가 되겠다,”면서” 광주와 대구는 역사가 있고 유대가 코로나19로 더욱 강화된 달빛동맹의 도시라고 했다.

김 의원은 멋진 작품을 만들어 주실 것을 당부드린다.“면서” 문재인 정부의 성공과 정권 재 창출의 적임자로 자평한다.“면서” 광주시민의 기대와 꿈을 저에게 실어주실 것을 당부 드린다.“고 했다.

[김부겸 전의원, 광주와의 일곱 번째 만남] 제 아버님은 예비역 공군 중령이십니다. 세 번이나 감옥을 들락거리는 아들 탓에 말 못 할 고초를 겪으셨습니다. 보안대에 끌려가시기도 했습니다. 저와 광주의 첫 만남은 아버님 덕분입니다. 어린 시절 아버님의 근무지였던 광주를 방학 때마다 찾았습니다.

광주와 저의 두 번째 만남은 1980년 5월이었습니다. 신군부의 만행을 알리고자 유인물을 찍어 서울 금호동, 옥수동 산동네에 뿌렸습니다. 유인물 제목이 ‘광주가 죽어가고 있습니다.’였습니다.

40년이 흘렀지만 ‘80년 5월 광주’는 진행형입니다. 아직도 아들을 찾아 무연고 시체를 찾아다녔다는 아버지, 자식의 묘비를 쓰다듬는 부모님들이 계십니다.

광주와 저의 세 번째 만남은 서울역 광장이었습니다. 1980년 5월 ‘서울의 봄’, 이른바 서울역 회군 때 군부의 개입을 우려한 나머지 철수하자는 결정에 반대하고, 투쟁을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시위대를 해산한 이틀 뒤 5·17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다음날 광주에서 학살이 발생했습니다.

그때 회군하지 않고 끝까지 버텼더라면, 계엄군의 총부리가 광주로 향하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서울역 시위 현장을 지켰던 제 가슴은 광주에 대한 부채감과 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움으로 복받쳤습니다.

광주와 제가 네 번째로 만난 것은,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둔 때였습니다. 저는 지역주의, 기득권, 과거라는 세 개의 벽을 깨기 위해 대구로 갔습니다. 총선 대구 출마를 강행했습니다. 낙선을 각오한 도전이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모두 말렸지만, 저를 움직인 것은 가슴 한가운데 묵직한 돌덩어리로 남아있는 ‘80년 광주’에 대한 부채 의식이었습니다. ‘살아남은 자의 책임’이 저에겐 더 컸습니다.

다섯 번째로 광주와 제가 만난 것은 행정안전부 장관 재임 시절입니다. 저는 광주 ‘민주화‧인권운동의 대부’이신 홍남순 변호사님을 기리는 사업에 각별히 신경 썼습니다.

홍 변호사님의 광주 동구 궁동 주택이 사적지로 지정됐으면서도 제대로 관리되고 있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관련 예산을 특별교부금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마음을 보탰습니다.

여섯 번째 만남은 광주가 대구에 내밀어 준 따뜻한 손길이었습니다. 대구가 ‘코로나-19’ 대규모 감염 확산으로 고통받고 있을 때, 어느 곳보다 먼저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준 곳은 광주였습니다.

대구의 확진 환자들을 맞아들여 정성을 다해 보살펴 주셨습니다. 광주와 전남의 지자체들, 시민들이 의료진을 위한 물품과 도시락을 보내주셨습니다.

오늘 저 김부겸은 또다시 광주를 향합니다. 그동안 수시로 오간 광주지만, 오늘은 또 다른 날입니다. 저는 민주당 당 대표 선거 출마를 앞두고 있습니다. 그 첫인사를 광주에 가서 드리고자 합니다. 민주당의 뿌리이기에 그게 마땅한 예의라고 생각했습니다. 만감이 교차하는, 저와 광주의 일곱 번째 만남 날입니다.

대구 출신의 한 대학생이 ‘80년 광주’와 만나 민주화 운동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대구의 아들’ 저 김부겸을 많은 광주 분들이 ‘광주의 아들’로 따뜻하게 품어주셨습니다. 제가 앞으로 걸어갈 미래도 결국 광주와 함께 갈 것입니다.

엊그제 7월 5일은 전남 화순에서 태어나 광주진흥고를 졸업한, 이한열 열사의 33주기 기일이었습니다. 한열이 앞에 부끄럽지 않게 정치하겠습니다. ‘광주 정신’에 따라 뚜벅뚜벅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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