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상 경남독립운동연구소장 발굴 서훈청원…결실

3·1만세운동에 가담해 옥고를 치른 전남 화순출신 김금석선생과 경남 하동출신 정의용선생이 한 재야사학자의 노력으로 광복 73년 만에 정부포상을 받는다.

▲ 김금석 선생의 광주 3?1운동 판결문 일부
▲ 김금석 선생의 광주 3?1운동 판결문 일부

13일 하동군에 따르면, 경남독립운동연구소 정재상 소장은 지난 2009년과 2018년 2월 대전 국가기록원과 경남 하동군 고전면사무소 문서고 등에서 광주 부동교 3·1만세운동에 가담해 옥고를 치른 김금석 선생 등 48명과 하동군 고전면 3·1만세운동에 참여한 정의용 선생 등 3명의 ‘판결문’과 ‘수형인명부’를 발굴해 정부에 포상을 청원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까지 12명이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또 이번에 2명의 독립운동가가 추가로 공적을 인정받아 각각 대통령표창 추서와 함께 국가유공자로 인정받는다고 밝혔다.

이번에 정부포상을 받는 광주3·1운동에 가담한 김금석 선생은 당시 광주제중원 남자 간호사로 활동했다.

그는 전남 화순군 남면 사평리 출신으로 1919년 3월 10일 오후 3시께 광주 부동교 아래 작은 장터에서 김강·김철·최병준·최한영 등과 숭일학교·수피아여학교·광주농업학교 교사 및 학생 주민 1천 500여명이 모여 독립만세운동을 펼쳤다.

이일로 주동자 김강·김철·홍순남 등 가담자 대부분이 체포됐다. 이때 선생도 체포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4개월 형을 받고 옥고를 치렸으며, 하동 3·1운동에 가담한 정의용 선생은 고전면 성천리 출신으로, 고전면 주교 3·1만세운동에 참여했다.

그는 1919년 4월 고전면 주교 장날을 이용하여 같은 마을의 박영묵·이종인·정상정·정재기 등 33인과 함께 일신단을 조직하고 4월 6일 주교리 장터에서 1천여 명의 장꾼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펼쳤다.

이 같은 일로 다음날 7일 성천리 지소마을에서 정의용은 일본경찰에 체포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태형 90도를 받아 고초를 겪었다.

한편 정재상 소장은 “광주 3·1만세 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항일운동가 33인은 아직도 미포상 상태”라며 “정부에서는 조속한 조사를 통해 이분들에 대한 국가의 합당한 예우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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