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년의 세월 미완의 독립, 분단의 아픔 완전한 통일은 언제?

일제 36년의 압박에서 벗어나 완전한 조국독립을 외치던 옛 선인들의 아픔을 기억하고 아직도 요원한 완전한 독립(통일)의 염원을 담은 광주독립만세운동(광주3.1만세운동99주년)재현행사가 광주3.1만세운동 기념동상 앞(광주수피아여고 교정)에서 열렸다.

광주수피아여자고등학교 교정에서 열린 광주독립만세운동, "제99주년 재현행사1
광주수피아여자고등학교 교정에서 열린 광주독립만세운동, "제99주년 재현행사1

10일 오전 9시 30부터 시작된 광주독립만세운동(광주3.1만세운동99주년)재현행사에는 김양주 추진위원장, 고재영 광주수피아여자고등학교 교장, 박현숙 광주수피아여자중학교 교장, 김주용 광주지방보훈청장, 김갑재 광복회장 광주전남지부장, 송희성 애국지사유가족대표, 장휘국 광주시교육감, 장병완 국회의원, 김용집 광주시의회 의원, 박용화 남구의회 의원과 수피아여자고등학교 학생 300여명이 참여했다.

광주수피아여자고등학교 교정에서 열린 광주독립만세운동, "제99주년 재현행사2
광주수피아여자고등학교 교정에서 열린 광주독립만세운동, "제99주년 재현행사2

오늘 열린 광주독립만세운동(광주3.1만세운동99주년)재현행사는 광복회, 광주독립만세운동재현행사 추진위원회가 주최하고 국가보훈처가 후원했다. 또한 오늘 열린 재현 행사의 근원은 1919년 2월 중순 지역의 개회된 근대정신과 독립운동가 김마리아 여사(양림동거주)와 그 친지들과 정광호 (양림동출신) 등의 밀사들을 통하여 어느 지역보다 국제정세와 국내외 독립운동 기운을 정확히 읽고 만세운동 준비를 거의 완료하였으나 서울보다 먼저 거사할 수 없다고 하여 최흥종, 김철 등 중심인물들이 서울에 갔다가 광주의 가장 핵심 인사인 최흥종 선생이 1919년 3월 1일 서울 만세시위에서 구속됨으로써 광주는 3월 1일부터 큰 희생을 치렸다.

광주수피아여자고등학교 교정에서 열린 광주독립만세운동, "제99주년 재현행사3
광주수피아여자고등학교 교정에서 열린 광주독립만세운동, "제99주년 재현행사3

큰 날리에서 불구하고 우국지사들은 조직을 정비 마침내 3월 10일 작은 장날에 터진 도도한 만세물결은 호남 각처로 전파되었으며, 출옥 후에도 최흥종 선생과 우국지사들은 광주독립만세운동 정신을 이어가는 각종사회운동과 독립운동을 국내에서 끗 끗이 활발히 전개함으로써 이 고장과 계례의 민족정기 고양에 이바지 하였다.

광주수피아여자고등학교 교정에서 열린 광주독립만세운동, "제99주년 재현행사4
광주수피아여자고등학교 교정에서 열린 광주독립만세운동, "제99주년 재현행사4

광주3.1만세운동의 이러한 특징을 살려 우리는 그 정신과 만세 옛길의 행진을 재현하는 행사를 시행하고 있다.

광주수피아여자고등학교 교정에서 열린 광주독립만세운동, "제99주년 재현행사6
광주수피아여자고등학교 교정에서 열린 광주독립만세운동, "제99주년 재현행사6

광주독립만세운동재현행사 추진위원회 관계자는 “이 행사를 통하여 빛고을 광주시민들과 우리의 다음 세대들이 일제 강점과 광주. 호남 의병 역사의 자취가 남아있는 광주공원, 의병처장이자 독립만세운동의 현장이던 작은 장터(부동교 일원) 유혈진압이 이뤄진 옛 일본 경찰서 자리, 옛 일본군 주둔지 등을 기억하며 나라사랑, 계례사랑의 마음을 새롭게 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광주수피아여자고등학교 교정에서 열린 광주독립만세운동, "제99주년 재현행사6
광주수피아여자고등학교 교정에서 열린 광주독립만세운동, "제99주년 재현행사6

 

 

저작권자 © 빛가람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