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 고려극장 창립 85주년 맞아

‘원동 고려인극장’과 ‘타쉬켄트 조선극장’ 설립을 주도하였고 ‘사할린 조선극장’을 중흥시킨 뒤 말년에 ‘카자흐스탄 고려극장’으로 돌아간 인물이 있었다.

그는 뛰어난 배우였을 뿐만 아니라 탁월한 연출가이기도 했으며 고려인 연극사에 길이 남을 희곡들을 쓴 작가이기도 했다. 한반도 부산에서 태어나 소련으로 건너가서 바람처럼 살다 간 김해운이 그 주인공이다.” (‘김해운 희곡’ 머리말 중에서)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 고려극장 창립 85주년을 맞아 ‘원동 고려인극장(1932~1937년)’ [현 카자흐스탄 고려극장의 전신]에서 공연된 연극대본 등 8편의 희곡이 공개되었다.

김해운 희곡집에는 1935년 5월 12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초연된 연극 「동북선」을 비롯하여 1948년 타쉬켄트 조선극장 무대에 오른 「생활」, 1957년 사할린 조선극장에서 공연된 「장화와 홍련」 등 당시 소련의 각 우리말극장들을 대표하는 희곡들이 수록되었다.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고려극장 창립 맴버 김해운의 행적도 자세히 고증되었고, 부록에는 그가 쓴 시와 노래가사들도 발굴, 정리되어 있다. 재소고려인 연구가로 잘 알려진 김병학 시인이 책으로 엮었다.

이 희곡집은 재소고려인 연극사의 빠진 고리를 복원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85년 역사를 자랑하는 고려극장이 여전히 카자흐스탄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정작 연극무대에 오른 희곡작품은 별로 남아있지 않고, 1950년대에 문을 닫은 타쉬켄트 조선극장과 사할린 조선극장에서 공연된 희곡작품은 전혀 전하고 있지 않은데다 그 극장들이 존재했던 역사적 사실마저 거의 잊혀져버렸기 때문이다.

더욱이 강제이주 이전에 무대에 오른 희곡작품은 아직 발견된 바 없다. ‘김해운 희곡집’은 그동안 접혀져있던 고려인연극사의 핵심 장들을 펼쳐준다.

김해운 희곡의 백미는 단연 「동북선」이다. 「동북선」은 일제가 러시아로 진출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자 함경북도 청진에서 웅기(지금의 선봉)에 이르는 동북철도를 부설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조선의 농민과 노동자들을 동원하여 가혹하게 혹사시키자 이들이 억압에 맞서 격렬하게 항쟁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희곡 「생활」은 가정파탄의 슬픔을 이기고 생활전선에 뛰어든 여주인공의 내적‧외적 변화과정을 묘사한 것이고, 「장화와 홍련」은 장화홍련전을 근대적, 사회주의적 관점으로 새롭게 각색한 것이다.

김해운은 1932년 9월 9일에 설립된 원동 고려극장 창립 맴버들 중 특이하게 한반도 부산 출신이다. 그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희곡 「동북선」에 짧지만 강렬하게 묘사해놓기도 했다.

엮은이가 언급하고 있듯이 김해운 희곡 중에는 스탈린 치하에서 어쩔 수 없이 체제와 개인숭배를 찬양한 것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엮은이는 고려인 인텔리들이 처한 특수한 상황과 한계를 너그럽게 보듬을 때 우리의 이해의 지평도 아득히 넓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한편, 김해운 희곡집을 엮은 김병학 시인은 전남 신안출신으로 카자흐스탄에서 25년을 거주하면서 재소고려인의 노래를 찾아서, 한진전집, 경천아일록 등 다수의 재소고려인 관련 서적과 시집, 에세이집, 번역시집 등을 펴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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