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 가서 지구를 봅니다. 아시아도 아프리카도 없이 그저 푸른 공입니다. 몇백개의 국가를 색깔로 칠한 세계지도도 아무런 쓸모가 없는 어여쁜 구슬입니다. 아니 보이저 1호가 태양계 밖에서 보내 온 지구의 사진을 보고 칼 세이건은 ‘창백한 푸른 점’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그렇듯이 몇백년 뒤의 달라진 세계에는 어쩌면 아시아나 유럽의 의미조차도 남아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저 경계가 지워진 하나의 삶의 공공장소일 것입니다. 끝내 하나의 ‘푸른 점’ 일 것입니다.

이런 상상을 놔두고 아시아는 누구인가라는 갑작스러운 질문이 여기 있습니다. 이 질문은 막연할수록 아시아의 실재성과 허구성이 함께 눌어붙는데 대한 망설임도 담아야 합니다.

이 망설임은 쉽사리 떨쳐버리지 못합니다. 아시아적 가치 실현에의 열망을 앞두고 우리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새김질 해봅니다. 10대 미성년 시절의 초등학교 교실에서 만난 세계지도에서 아시아라는 이름과 그 드넓은 권역을 처음 만납니다.

지도는 순수합니다. 그러나 지도의 제작은 권력의 제작이기도 합니다. 특히 근대 세계지도는 인식주체로서의 서구에 의해서 그려졌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 지도의 어디에도 높고 낮은 지대의 개략적 표기는 있으되 지역과 지역의 차별 따위는 없다는 점입니다. 각 국가나 지역의 경계는 색깔이나 경계선으로 표시했을 따름입니다.

하지만 더 분명한 것은 지도의 권력의지는 그것을 그린 자의 자기합리화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아시아 또는 오리엔트라는 것은 먼저 유럽 또는 옥시덴트의 역사 구축의 주체로 확인됨으로써 그 객체나 대상으로 상정된 것이 아닌가요.

이에 못지않게 근대 서구사상이나 서구중심사관은 아시아를 역사 없는 공간이라고 헤겔 이래 줄줄이 말해왔습니다. 마르크스의 아시아 객체론이나 뢰비트의 아시아 역사부재론도 없지 않습니다. 고대그리스 신화는 아시아라는 여신과 유로페라는 여신으로 동과 서의 방향을 설정했습니다. 이에 앞서서 앗시리아어(語)로, ‘아수’ 즉 해 뜨는 쪽이 그리스로 건너가 아시아라는 여신이 됩니다. 여기에 셈족의 ‘동쪽’ 인 아시아에 이어서 뒷날의 라틴어 ‘오리엔스’가 오늘의 오리엔트가 됨으로써 우리는 그것을 동양이라 번역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통속적으로 동양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한 중 일 바둑대회나 야구경기 그리고 유교에 대한 학술회의 따위로 사용해 왔습니다. 기껏해야 오랜 한자문화권의 이 세 나라만을 함부로 동양이라고 좁혀오기도 한 것입니다. 이는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이 범(汎) 아시아적 시야일 수 없는 제한적인 중동지역이라는 체험에 바탕을 두고 있는 노릇과도 고만고만합니다.

심지어는 서구 근대화를 뒤따른 아시아 몇 지역의 선진 근대화의 지역에서는 서구라는 타자를 내면화함으로써 이른바 ‘오리엔트의 오리엔트화(化)’를 저절로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아시아는 지구상의 육지면적 30%를 차지합니다. 지구의 하루 24시간 중 아시아의 동쪽과 서쪽 사이의 11시간 시차를 망라하는 크기입니다. 또한 서구 각 민족이 백색인종 코카소이드인(人)인데 비해 아시아의 인종과 민족은 형형색색의 다인종 다민족입니다. 종교 역시 세계종교이건 원시종교이건 아시아가 그산지로서 실로 군웅할거 같은 다종교입니다. 그리고 다문화입니다.

이같은 복합성이나 이질성은 그 광대한 지역에서의 단일개념을 추상할 수 없게 합니다. 아시아는 '아시아들'입니다. 아시아는 일원(一元)이 아니라 다원입니다.

또한 아시아는 유럽 지형과 달리 세계의 지붕이라는 고산준령과 사막, 황야, 그리고 각 지역의 평원이나 고원과 저지대들의 다양한 자연환경에 의해서 결코 일관된 자기동일성을 만들어 내기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피할 수 없는 중요한 지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시아는 아시아를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아시아야말로 아시아가 낯설다는 사실입니다.

시베리아의 관습과 다인종 인도네시아의 동양 이슬람 관습 사이에서 무엇을 주고 받습니까. 안나푸르나 남부의 인도와 중국은 그들의 대륙문화를 어떻게 화해시킬 수 있습니까. 한국과 사우디와의 우정은 얼마나 자연스럽고 얼마나 자연스럽지 못한가요.

그동안 근대의 아시아 각 지역은 타율과 자의를 아울러 서구화에 경진(競進)해 왔습니다. 실재로 우리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거의 세뇌적으로 동화되어 있으나 인도나 터키 영화의 화면에서는 때로 어떤 기괴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나 자신도 세계 각 지역의 초청행사에 참가할 때 유럽이나 미국 쪽의 친구는 많아도 아시아의 친구는 의무적인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음식 역시 티벳음식보다 미국의 정크푸드에 익숙합니다.

언어 역시 아랍어의 그 예술적인 문자 미학에도 불구하고, 그 오묘한 심연의 울림을 가진 성가(聲價)에도 불구하고, 인구어(印歐語)에의 친숙한 인상에 미치지 못합니다.   이런 환경에서 아시아 의식의 전망이란 창을 열면 거기에 활짝 펼쳐지는 득의(得意)의 풍경일 수만 없게 착잡해지기도 합니다.

사실인즉 아시아는 아시아라는 이름 없이도 각 지역의 역내(域內)에서 오랜 삶의 경륜과 문화를 자체로 발전시켜 왔습니다. 이를테면 중국은 중국 자체로 ‘천하(天下)’의 사상을 구현하고 중앙아시아 유목권은 저 인류문명의 단초를 연 스키타이의 말을 타는 자신만만한 생활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동남아시아 열대밀림 속의 캄보디아 사원은 무엇인가요. 인도 가주라호의 현란한 육체 형이상학은 또 무엇인가요. 열사(熱沙)의 아라비아가 초생달을 조상들의 이데올로기로 삼는 그 우주에의 합일은 무엇일까요. 아시아만큼 억대(億臺)의 신들이 우글거리는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더 이상의 상상력이 더해지지 않아도 될 자신의 상상력으로 하여금 대대로 이어지는 동안 인류사의 유전(流轉)이 정착생활에 적응합니다. 그런 아시아는 누군가가 시건방지게 말한 아시아적 정체성을 역설적으로 자신의 원리로 삼았는지 모릅니다.

고대의 아시아 문화에 비해서 서구는 그때까지 그저 생태적인 야만에 가까웠습니다, 그것이 중세 유럽의 모험적인 팽창주의에 이어 제국주의를 추구함으로써 아시아와 그 밖의 지역들이 철저한 수동의 객체로 전락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고대 아시아는 하나의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케토니아의 알렉산드로스에 의한 페르시아 문명의 극적인 해체가 그것입니다. 그리고 18세기 나폴레옹의 이집트 정복 이래 서구의 농단으로 말미암아 동방 지역은 유럽에게 이국취미와 지배의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무한한 ‘개척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유럽 밖의 여러 지역에서 기아와 내전으로 밤낮을 보내는 원인을 유럽의 지배논리에서 찾는 것은 무리가 아닙니다. 동아시아 역시 자신들의 봉건사회가 지쳐있을 때 서구 또는 서구모방에 의한 탈아(脫亞)주의의 아시아적 지배에 의해서 위기의 자아를 발견하고 있습니다.

저 근대 벽두의 딱한 자존심으로 중국은 중체서용(中体西用), 일본은 화혼양재(和魂洋才) 그리고 조선은 동도서기(東道西器)라는 체(体)와 용(用)의 타협노선을 만들어내는 환경은 결코 자랑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이런 구차함이 서구의 근대성에 거슬러보고자 하는 ‘근대의 초극(超克)’으로 명멸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아시아는 차라리 원조(元祖)로서의 근대 몇백년의 역사변동을 최단 시일로 압축하는 이변을 낳고, 어떤 시점으로는 유럽보다 더 치열한 근대화를 작동시키켜 오고 있습니다. 20세기의 네 마리 용이니 21세기 벽두 친디아(차이나-인디아)의 맹목적이기까지 한 성장은 서구의 근대가 근대 이후의 자기정체에 빠져든 일상에 커다란 충격을 더하기에 이르기까지 합니다.

이런 놀라운 사례의 그늘에서 아시아적 천민자본주의가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십상입니다. 아시아가 아시아 자신으로서의 성찰과 타자로부터의 비판을 무릅쓰는 동안 그 이상으로 아시아의 원초적 가능성이 장차 유럽과의 상생을 두고 존중되는 경우가 왜 없겠습니까.

실지로 서구의 근원인 고대 그리스 문명의 신성한 명사(名詞)들은 거의가 고대 인도의 모태에서 태어난 것입니다. 아니면 수메루와 이집트에 의한 것이기도 합니다.

호메로스의 『일리어스』는 인도의 『라마야나』 후신(後身)임이 분명합니다. 미노스는 마누입니다. 데아우스가 제우스로 됩니다. 하라카리가 헤라클레스의 아비입니다. 최신의 연구 실증에 의하면 그리스문명 자체가 서아시아지역의 검은 문명 이동입니다.

세계 문학의 캐논인 빅토리아 영국의 에드윈 아놀드의 서사시 『아시아의 빛』에서는 다원적 개방의 불교가 지극정성으로 예찬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역사가 미쉴레는 ‘서양에서는 모든 것이 좁다. 그리스는 작아서 숨이 막히고 유대는 메말라서 숨이 차다. 저 고고한 아시아를, 심원한 동양을 조금이라도 바라보라’라고 부르짖었습니다.

또 다른 역사가도 아시아가 그리스 로마를 능가하는 ‘깊은 고대’를 가졌음을 강조했습니다. 니체는 인도의 윤회사상에서 그의 영겁회귀사상의 씨앗을 얻었습니다. 그 자신을 ‘서양의 붓다’라고 자처했습니다. 이런 서구의 동양 귀의는 아직은 전야제적이지만 오늘날 고도의 범세계적인 현상으로 되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아시아 또는 오리엔트는 그 누구보다 서양화 근대화에 열광합니다. 그래서 문명상호무역이라는 동서의 가치 교체에 대한 술어가 생겨날 법 합니다.

아시아는 고대 아시아 이상으로 아시아적인 때가 아직 없습니다. 그 원숙하고 심원한 추축(樞軸)시대의 사상과 시의 세계야말로 오늘의 아시아가 창조적으로 계승하거나 재현하고 있는가 묻노라면 자괴할 여지가 많습니다.

아시아는 이러한 여러 불확실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의 시작에 동참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아시아 각 지역의 이질들이 자주 조우하고 교감함으로써 동질의 싹을 키워야 합니다. 장차 낯선 남인도 드라비다 후손이 동북아시아 황색인의 또 하나의 자화상일지 모릅니다. 아시아는 전생과 내생이라는 삶의 연속공간으로 통한 자아지속을 해오지 않았습니까.

동아시아이든 중앙아시아이든 서아시아이든 북위 50도 일대의 초원이든 이로부터 체험으로서의 연대와 ‘차이들의 합동’이라는 문화실천에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히말라야학(鶴)은 며칠째 굶은 나머지 가벼워진 몸으로 히말라야 상공의 제트기류를 타고 히말라야 북쪽과 전혀 다른 인도의 비하루주 늪지대로 내려앉습니다.

한국의 서해는 한 중 일 어느 쪽의 영해가 아니라 다국적 초국적 공해(公海)이고 너와 내가 만나는 삶의 지중해가 되어 마땅합니다. 무엇보다 평화를 불러들여야 합니다.

고대 당나라도 수많은 타자들의 가치를 평화로서 받아들였습니다. 오늘의 한국은 시베리아 샤머니즘 불교와 유교, 도교, 기독교들의 동거를 상호배려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문화텍스트로서의 동양의 시간은 내일의 아시아를 총천연색으로 형상화하는 '아시아들'로서의 아시아상(像)을 탄생시켜야 할 것입니다.

무등산은 이제 광주의 무등으로부터 아시아의 무등으로 나아갑니다.   여러분에게 저의 평화시 한편을 낭송해드리겠습니다.


그것은   그것은 설렘  총구멍에서 눈물이 흘러나오는 것

그것은  더하기보다 빼기 곱하기보다 나누기

그것은 귀 기울이는 것

그것은 밥 한 그릇

그것은  지하의 뿌리가 지상의 잎새들을 걱정하지 않는 것

그것은 누구의 어린 피리 소리

그것은 갖가지 삶 다른 삶이 다른 삶에 굴복하지 않는 것

그것은 지난날 소가 쟁기 끌고 밭 가는 풍경 어이할거나 소의 천년 멍에

그것은 아버지가 아들보다 먼저 죽는 것

그것은 모국어

그것은 누구의 피가 누구의 피를 데워주는 것

그것은 아기 울음소리가 모든 것인 엄마

그것은 다도해

그것은 인간이 인간에 대하여 인간인 것  인간이 자연에 대하여 자연인 것

그것은  끝내 나 자신이 없어지는 것

오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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