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청장 김찬)은 광주광역시에 있는 ‘광주 충효동 왕버들 군(光州 忠孝洞 왕버들 群)’을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로 지정 예고한다.

‘광주 충효동 왕버들 군(光州 忠孝洞 왕버들 群)’은 1500년대 말경 충효마을의 상징 숲이자 비보림(裨補林·풍수지리설에 따라 지형적 결함 등을 보완하기 위해 조성되고 유지되어온 숲)으로 조성됐다. ‘김덕령 나무’라고 불리는 등 나무와 관련된 유래나 일화들이 잘 전해지고 있어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큰 것으로 확인됐다.

수령이 430여 년 된 왕버들 3주가 무리지어 있으며, 높이가 8~13m로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되고 있는 다른 왕버들과 비교했을 때 수령이나 규모 등에서 우위에 있다. 수형과 수세 또한 매우 양호하다.

김덕령 장군의 형(김덕흥)이 임진왜란 때 금산전투에서 사망하자 의병을 수합(收合), 권율 장군 휘하에서 왜군의 호남 진출을 막는데 힘썼던 김덕령 장군의 탄신을 기념하기 위해 왕버들을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또 왕버들 군 바로 앞에는 김덕령 장군 일가의 애국충절을 기리기 위한 충효동 정려비각이 세워져 있어 이곳 주민들이 김덕령 나무라 부르고 있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지정 예고한 ‘광주 충효동 왕버들 군’에 대하여 30일간의 지정 예고 기간 중에 수렴된 이해 관계자와 각계의 의견을 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 심의 절차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로 공식 지정할 예정이다.
 

‘충효마을과 왕버들’에 대한 고찰   김영헌 (자료제공 /  북구청)

충효마을은 주변 환벽당과 식영정, 소쇄원과 어울려 15~16세기 호남사림문화를 꽃피우던 유서 깊은 곳이다. 송강 정철의 스승이었던 사촌(沙村) 김윤제(金允悌, 1501~1572)와 임진왜란 때 조선의병의 총수였던 충장공(忠壯公) 김덕령(金德齡, 1568~1596)이 태어난 마을이기도 하다.

광주댐을 지나 담양가사문학관에서 무등산장 쪽으로 약 400m쯤 가면 우람한 왕버들 3그루가 보이는데 여기가 충효마을이다. 이 마을은 무등산 북능으로 북봉을 거쳐 꼬막재로 이어지는 여러 가지 능선 중의 하나이다. 마을의 형성 시기는 어느 때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마을 앞 광주호 상류에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인 고인돌 7기가 있는 것으로 볼 때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충효마을은 광산김씨 낭장공파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데 이들이 이곳에 들어와 살게 된 것은 1470년 무렵이다. 증직으로 병조참판을 지낸 김덕령의 4대조부인 문손(文孫)이 광주시 서구 금호동에서 살다가 원래 이곳에 살고 있던 광주노씨 부인과 혼인하여 처가마을에 옮겨와 살면서부터 비롯되었다.

1789년『호구총수』에는 성촌(城村)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석저촌, 성내촌, 성안마을 등 여러 이름으로 불러 오다가, 김덕령 의병장의 충효정신을 기리기 위해 1788년(정조12) 정조 대왕으로부터 ‘충효리(忠孝里)’가 하사되어 점차 충효마을로 바꿔 불렀고 이제는 마을뿐만 아니라 인근 마을까지도 ‘충효동’이라 부르고 있다.

충효마을은 동․남․북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형이다. 마을에서 원효계곡으로 이어지는 남동쪽 골짜기에 형성된 길다란 ‘평무들’이 이 일대의 생활터전이 되고 있다. 마을 뒤편의 창계천을 따라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하여 건립된 여러 정자들로 인해 형성된 정자 문화권 안에 자리 잡은 마을이다. 풍수형국은 잠룡대학(潛龍待壑)으로 보기도 하고 연화부수(蓮花浮水)로 보기도 한다. 잠룡대학은 물속에 몸을 감추고 있는 용이 골짜기에 웅거하면서 비상할 기회를 노린다는 의미로 잠룡은 마을 뒤편으로 흐르는 창계의 자미탄(紫薇灘) 조대(釣臺)바위를 가리킨다고 한다. 이 바위를 물속에 떠 있는 연꽃으로 여기기도 한다. 이렇듯 좋은 터인 반면, 약점으로 마을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마을을 음택지(陰宅地)로 생각하고 있고, 광주호 건너편에 있는 구신(狗腎)바위(속칭 : 개좆바위)와 마을 내 우물(샘)을 연관 지어 좋지 않는 형국으로 보고 있다.

사실 서쪽으로 확 트인 이 마을 앞 0.85km 전방에는 구신바위가 마을을 정면으로 향하고 있어 ‘마을의 안녕과 평온, 번영’을 위해 이에 대한 비보(裨補;약하거나 모자란 것을 도와서 보태거나 채움)가 필요하여 이의 방패용으로 소나무와 매화나무, 왕버들 등 3종의 나무를 심었다는 것이다.

당시 소나무 1그루와 매화나무 1그루, 그리고 왕버들 5그루를 심어 ‘1松 1梅 5柳’라고 부른 ‘충효마을의 상징 조경수’이자 ‘비보 숲’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들 나무는 2012년 5월, 국립산립과학원에서 수령 측정 결과 430년(±10년)으로 보아 1500년대 말경에 심은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된다.

이외에도 왕버들 앞에 ‘말무덤’을 만들고, 구신바위와 가장 가까운 곳에는 그와 비견할만한 ‘입석’을 세웠다. 광주호에 편입되기 전에 이곳 들 명칭을 ‘맛 바우들’이라고 한 것도 ‘구신바위’와 ‘입석’을 견주어 불렀기 때문인 듯하다. 이렇듯 3중 겹겹이 ‘비보’를 하게 된 데는 당시 마을에 좋지 않은 큰 일이 발생하였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필자는 1592년에 일어나 7년간에 걸친 혹독한 전쟁을 치른 임진왜란과 관련성이 크다고 생각된다.

현재까지 이 왕버들 나무를 김덕령 장군의 탄신을 기념하기 위해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고, 일명 ‘김덕령 나무’라고도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결코 김덕령 장군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1596년 김덕령은 조선의병의 총수였지만 억울하게 역적의 누명을 쓰고 옥사를 당한다. 정유재란 때는 그의 처인 흥양이씨 부인을 비롯, 같이 창의를 했던 큰 처남 이인경의 부인 광산김씨, 작은 처남 이원경의 부인 제주양씨, 그의 의병 참여를 적극 권유하고 정신적 지주가 되었던 자형 김응회, 김응회의 어머니 창령성씨 다섯 분이 왜군에 쫓기다가 추월산 보리암 인근 낭떠러지에 떨어져 순절하거나 왜적의 무자비한 칼에 죽게 되는 불운을 잇 따라 당하게 된다.

그의 형 덕홍은 금산전투에서 순절하였고, 동생 덕보는 장군의 장례를 치른 뒤 그의 숙부가 살고 있던 화순의 석교에 은거하다가 얼마 안 되어 지리산 백운동으로 옮겨 숨어 살며 몸소 산밭을 갈고 짚신도 삼고 자리도 짜 마치 품팔이꾼처럼 행세하며 자취를 드러내지 않았다. 임란이 끝난 후에도 역적의 집안으로 몰려 이곳에 산 사람 또한 갖은 고통을 겪게 된다.

이와 같이 역적의 누명을 쓰고 옥사를 당하는데 그치지 않고, 친인척의 죽음 등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임진왜란 직후 ‘마을의 안녕과 평온, 번영’을 기리는 간절한 마음을 갖고 충효마을에 사는 광산김씨가 주축에 되어 이러한 사업을 추진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최소 10년 정도 된 나무를 심었을 경우를 가정한다면 연대(수령) 또한 틀리지 않는다. 1788년 김덕령 의병장 일가의 충․효․열을 기리기 위해 하사한 ‘충효리 정려비’가 1985년 2월 25일 광주시 기념물 제4호로 지정되어 왕버들 나무 앞에 세워진 것도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1松 1梅 5柳’ 중 광복이전에 매화 1그루와 왕버들 1그루는 말라 죽었으며, 1970년대 들어 마을 앞 도로를 확장하면서 소나무 1그루와 왕버들 1그루는 잘라버려 왕버들 3그루만 1989년 3월 20일 광주시 기념물 제16호로 지정되었다. 1999년 ‘1松 1梅’ 복원사업을 추진하여 왕버들 바로 옆에 심었다. 광주호에 편입된 ‘선돌’은 그대로 있고, ‘말무덤’은 2006년 광주호 호수생태원을 조성하면서 규모를 줄여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왕버들 나무는 버들과에 딸린 갈잎 큰키나무이다. 암수나무가 딴 그루를 이루며 4월에 꽃이 피고 열매는 삭과(朔果)로서 5월에 익는다. 우리나라 경기도 이남 지역과 일부 중부 이남지역, 중국지역에 분포하며 풍치림(風致林)과 정자목(亭子木)으로 널리 사랑을 받고 있다. 물가나 들에서 자라며, 목재는 가구와 땔감 등으로 쓰인다.

현재 3그루가 남아 있는 왕버들 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로서 한 그루가 아닌 3그루가 줄지어 있고, 생육상태 또한 매우 양호하다. 아울러 풍수지리에 입각하여 마을의 안녕과 평온, 번영을 도모하고자 하는 큰 염원을 지니고 있다. 특히 왕버들 나무 앞에 2006년 조성한 광주호 호수생태원과 함께 최상의 자연환경을 이루며 ‘광주문화관광의 1번지’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더욱이 왕버들 나무 반경 1km 내에는 문화유적이 즐비해 있다.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141호로 지정된 ‘충효동 도요지’를 비롯하여 광주시 지정문화재인 충효동 정려비각, 환벽당, 풍암정, 금곡동 제철유적지, 충장사, 김덕령 생가 등이 있고, 인근 담양에는 전라남도 지정문화재인 소쇄원을 비롯하여 식영정, 독수정, 가사문학관 등이 있어 생태환경이 양호하고 문화자원이 풍부한 지역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왕버들 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곳은 모두 3곳이다. 1968년 3월 4일 제193호로 지정된 ‘청송 관리 왕버들’(수령:390년)이 있고, 1982년 11월 4일 제296호로 지정된 ‘김제 종덕리 왕버들’(수령:310년)과 제298호로 지정된 ‘청도 덕촌리 털왕버들’(수령:210년)은 각자 특성이 있어 보존할 가치가 있다. ‘충효동 왕버들’ 또한 3그루가 한데 줄지어 있고, 400년이 넘어 천연기념물 중 가장 오래된 나무로서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숨어있어 민속적․생물학적 자료로서의 보존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전되어야 할 것이다.

‘충효동 왕버들’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경우 그 효과는 대단하다고 본다. 이제 광주광역시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를 보유하게 되고, ‘충효마을과 구신바위’ 사이에서 파생된 왕버들과 말무덤, 입석, 그리고 전쟁 중 억울한 죽임을 당한 의병장 김덕령까지 연결된 스토리텔링이 가능해져 민속학적 가치 또한 매우 크다. 또 인근 생태문화자원과 함께 시가(가사)문화권의 위상이 높아지고 전국에 알려지는 직접적인 효과로 문화관광은 배가가 될 것이다. 이밖에도 국비로 관리되어 지방비를 절감할 수 있게 되고, 광주광역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무등산 국립공원 지정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왕버들] 북구청이 국립산림과학원에 수령 측정을 의뢰하여 2012년 5월 18일 통보받은 내용이다.
1번목 : 수관폭(W) 동서 22.6m, 남북 18.1m, 수고(H) 8.0m, 흉고직경(DBH) 8.35m, 근원둘레(R) 7.20m
2번목 : 수관폭(W) 동서 13.4m, 남북 17.7m, 수고(H) 9.0m, 흉고직경(DBH) 6.95m, 근원둘레(R) 8.10m
3번목 : 수관폭(W) 동서 24.0m, 남북 26.6m, 수고(H) 13.0m, 흉고직경(DBH) 8.10m, 근원둘레(R) 8.90m
 

(참고문헌)
○ 한국학회,『한국지명총람13』(전남편1), 1982년
○ 광주광역시,『문화재도록』, 라이프, 1999년
○ 광주시립민속박물관,『광주의 동족마을』, 드림디자인, 2004년
○ 김영헌,『김덕령 평전』, 향지사, 2006년
○ 문화재청 홈페이지
○ 자료제공/ 광주광역시 북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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