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루카 2,10)

주교 광주대교구 교구장 김희중 히지노 대주교는 2021 성탄메시지를 통해 세상을 비추는 참빛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경축하며, 이 빛이 모든 사람 속에서 기쁨과 희망으로 빛나기를 기원한다.고 했다.

2021년 교구장 성탄메시지 (전문)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루카 2,10)

세상을 비추는 참빛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경축하며, 이 빛이 모든 사람 속에서 기쁨과 희망으로 빛나기를 기원합니다.

▲ 천주교 광주대교구 교구장 김희중 히지노 대주교 (자료사진)
▲ 천주교 광주대교구 교구장 김희중 히지노 대주교 (자료사진)

1. 지친 세상에 기쁨과 희망을!

코로나19라는 끝을 알 수 없는 어둠의 심연이 여전히 우리의 평범한 일상과 삶을 암울하게 뒤덮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지쳐가고 있지만, 특히 가난하고, 약하고, 병들고, 연로하신 분들이 더욱 곤란한 처지에 놓여있습니다. 이처럼 지친 사람들에게, 그리고 지친 세상에, 기쁨과 희망이 어느 때보다 더욱 간절해졌습니다.

연약한 아기 예수님의 모습으로 하느님께서 친히 희로애락으로 점철된 우리 삶의 한 가운데로 들어오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의 운명 속으로 들어오시어, 우리의 운명과 함께하시고, 그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이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루카 2,10)인 것은 바로 그런 까닭입니다. 그래서 아기 예수님의 탄생은, 우리의 기쁨과 희망이 바로 짙은 어둠 속에서 솟아나는 샛별과 같은 것임을, 좌절과 절망이 가득한 가운데서 발견한 희망, 죽음의 길목에서 되찾은 생명과도 같은 것임을 깨닫게 해줍니다.

2. 예수님께서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찢긴 마음을 싸매 주셨듯이...

우리는 사람이 되신 하느님을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 속에서 만납니다. 우리는 아파하고 슬퍼하는 사람들 속에서 함께 아파하고 슬퍼하시는 하느님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난하고 고통받는 모습을 알아보고, 그들의 궁핍을 덜어 주도록 노력하며, 그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섬기고자 합니다’(교회헌장, 8항 참조). 그렇습니다. 이 길이 바로 우리가 작고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오신 하느님을 발견하는 길이고,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한껏 기뻐하고, 겸손하게 경배하는 길입니다.

3. 세상 속 ‘길 위의 공동체’를 꿈꾸며...

코로나19는 비록 우리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지금까지 가꿔온 일상의 모습을 새롭게 비춰주고, 이를 통해 우리 사회가 쇄신되어 공동체성을 회복하도록 재촉하는 징표이고 계기입니다.

하느님께 이르는 길이신 예수님께서는 길 위에서 사람들과 만나 하느님 나라의 공동체를 이루셨습니다(요한 14,6 참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공동체를 길 위에서 이루셨고, 세상 속에서 공동체를 이루도록 제자들을 파견하셨습니다(마태 10,1-15 참조). 예수님께서는 병자와 허약한 사람들, 갖가지 질병과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고쳐주시고(마태 4,23-25 참조),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한 식탁에서 음식을 나누는 인격적인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셨습니다(마태 9,9-13 참조).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길 위에서 낯선 이방인과 만나 친교의 공동체를 이루고(루카 4장 참조), 공동체로부터 외면당하거나 배척받은 사람들을 불러들여 다시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마르 5,1-20 참조).

예수님께서 이루셨던 공동체는 인간 사이에 가로놓인 모든 경계와 장벽을 허무는 것이었고, 혈연과 민족과 종교의 차이마저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마구간에서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 곁에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하는 소와 이방인을 상징하는 말이 등장하는 모습은 바로 모든 사람의 구원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이루신 공동체는 어떠한 인간적인 차별도 배제하며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격을 소중히 여기고, 모든 사람을 하느님의 모습을 지닌 소중한 존재로 받아들여 존중함으로써 이루어진 ‘하느님 나라’의 공동체였습니다.

4. 지친 사람들에게 기쁨과 희망이 되는 교회공동체를 위하여

우리가 가꿔야 할 공동체는 바로 ‘하느님 나라’를 지향합니다.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공동체, 세상 사람들 누구나 기꺼이 환대하는 공동체, 어려운 이웃과 연대하는 공동체를 이뤄가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을 위한 ‘백신 나눔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도 세상에 열린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공동체는 말과 행동으로 다른 이들의 일상생활에 뛰어들어 그들과 거리를 좁히고, 필요하다면 기꺼이 자신을 낮추며, 인간의 삶을 끌어안고, 다른 이들 안에서 고통 받고 계시는 그리스도의 몸을 어루만집니다”(복음의 기쁨, 24항).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 모두는 세상 속에서 살아있고 생동하는 공동체를 이루도록 초대받았습니다. 이웃에 대한 존중과 환대, 배려와 연대, 그리고 기쁨과 슬픔을 공감하며 세상 속에서 살아있는 공동체를 이룹시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현존하시는’(요한 1,14 참조) 하느님의 육화를 경배하고 경축하는 의미입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우리 가운데 탄생하심을 축하합니다!

2021년 12월 25일

천주교 광주대교구 교구장 김희중 히지노 대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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