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섭 시장 “사유지에 남아있는 잔재물 청산작업도 추진”

광주광역시는 13일 오전 일제 신사인 송정공원 금선사에서 일제 식민통치 잔재물에 대한 단죄문 제막식을 개최했다.

▲ 기념사를 하고 있는 이용섭 광주시장
▲ 기념사를 하고 있는 이용섭 광주시장

친일 잔재 청산을 위한 이번 단죄문 제막식은 지난해 8월 광주공원 사적비군에 이어 두 번째다.

이날 제막식은 이용섭 시장, 장휘국 시교육감, 김삼호 광산구청장, 이범기 전남문화재영구소 소장, 근선사 영일 주지스님. 김갑제 광복회 광주전남연합지부장 및 광복회원, 친일잔재청산 전담기구 회원 등이 참여한 가운데 기념사, 단죄문 낭독, 일제 잔재물에 대한 단죄문 제막, 친일잔재물 현장점검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특히 제막식 국민의례에서는 ‘꿈꾸는 예술단’과 함께 일제 강점기에 항일 무장 투쟁을 하며 독립군이 불렀던 ‘애국가’를 불렀다.

제막식이 열린 송정공원 금선사는 일제 식민지시대 당시 내선일체 강조 등 조선인의 정신개조를 위해 일본이 1941년 조성한 신사로 현재 전국에서 유일하게 목조 건물 자체가 남아있다.

▲ 13일 열린 친일잔재 청산을 위한 단죄문 제막 후 기념촬영
▲ 13일 열린 친일잔재 청산을 위한 단죄문 제막 후 기념촬영

이번에 설치된 단죄문에는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 등 객관적 자료를 토대로 친일 인사의 행적 등이 기록됐다.

광주시는 올해 원효사 송화식 부도비·부도탑 너릿재 유아숲 공원 서정주의 ‘무등을 보며’ 시비 사직공원 인근 양파정에 걸린 정봉현·여규형·남기윤·정윤수 현판 세하동 습향각에 설치된 신철균·남계룡 현판 광주학생 독립운동 기념회관 지하동굴 송정공원 내에 잔존하고 있는 참계, 신목, 참도, 석등롱기단, 대웅전 앞 계단, 신주사무소, 배전, 나무아미타불탑 등 6곳 21개 잔재물에 단죄문을 설치했다.

▲ 단죄문을 낭독하고 있는 김순홍 친일잔재청산 T/F위원장
▲ 단죄문을 낭독하고 있는 김순홍 친일잔재청산 T/F위원장

광주시는 단죄문 설치를 계기로 과거 대한민국 100년을 돌이켜 보고 미래 대한민국 100년을 준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용섭 시장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신사 건물인 송정공원 금선사 등의 잔재물에 단죄물을 설치한데 이어 내년부터는 사유지에 남아있는 친일 잔재물에 대해 소유주와의 협의를 거쳐 청산작업을 이어가겠다”며 “역사를 바로 세우며 정의롭게 풍요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위대한 여정에 150만 광주시민이 함께 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 기념사를 하고 있는 장휘국 교육감
▲ 기념사를 하고 있는 장휘국 교육감

광주예술고등학교 역사교사 신봉수선생의 송정신사 설명문 (전문)

신사는 원래 일본의 민간신앙이지만, 우리나라에 의진 신사는 일본국에 대한 복종과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기 위한 것으로 전국 곳곳에 채워집니다. 서울의 남산에도 광주의 광주공원과 이곳 송정공원에도. 장성공원, 나주 남산공원, 함평공원 등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는 어김없이 신사가 세워졌습니다

▲ 석탑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는 이용섭 시장 일행
▲ 석탑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는 이용섭 시장 일행

1945년 광복 후 전국의 신사들이 대부분 철거가 됩니다만, 이곳 송정신사는 목조로 지어진 신사 건물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 있습니다.

이곳에는 대정 11년인 1922년 일본의 태양신이자 시조신이라 할 수 있는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를 모시는 신명신사가 세워졌습니다

그러다가 소화 15년인 1940년 신사의 격을 높여 정신사로 승인을 받고 !941년 창립됩니다.

정신사는 신을 모시는 신전 참배자들이 손뼉 치면서 소원을 비는 배전 신주 사무소 제사음식을 준비하는 산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현재 는 신주사무소와 배전만 남이 있고 신찬소와 신전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 기념사를 하고 있는 송형일 광주시의원
▲ 기념사를 하고 있는 송형일 광주시의원

입구의 금산사 종무소가 바로 당시의 신주사무소였습니다. 그리고 종무사소 바로 옆에 있는 벚꽃 나무가 신목입니다. 대의 나무 중에서 거목이나 고목을 신이라고 하는데 금줄로 묶거나 울타리를 쳐서 특별히 관리합니다.

저희들이 지금 서 있는 이곳은 배전으로 향하는 참배길 즉 창도입니다. 원형이 많이 바뀌었지만, 계단석 가운데 일부는 당시의 것으로 보입니다. 계단 모서리에 세워둔 기둥은 끝이 뾰족한데, 이 모양은 일제 강점기 건립된 각종 건축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제 잔재물입니다. 그

▲ 기념사를 하고 있는 김삼호 광산구청장
▲ 기념사를 하고 있는 김삼호 광산구청장

그리고 대웅전 앞 계단 말에 있는 석등롱 역시 일제 잔재입니다. 석등롱은 신의 가호를 바라라는 뜨거운 신앙심의 표현입니다. 곁면에는 봉등이라고 쓰여있습니다. 상부는 파괴되어 제 모습을 ㅈ추정하기 어렵습니다 뒷면에는 일왕의 연호와 기부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는데 해방 후에 시멘트를 이용해 지운 것으로 보입니다.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 모서리에 세워진 기둥에는 봉헌이라고 새겨 저 있고 현자가 새겨진 기둥 옆면에는 대정 13년(1924년) 이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대부분의 연호를 시멘트로 발라서 없앴는데, 이곳은 몰라서 그대로 놔둔 것인지 남아있습니다. 언제 이 계단을 완공했는지 명확지 말 수 있는 자료입니다.

▲ 단죄문을 낭독하고 있는 김순홍 친일잔재청산 T/F위원장
▲ 단죄문을 낭독하고 있는 김순홍 친일잔재청산 T/F위원장

금산사 대웅전으로 사용되고 있는 이 건물은 신사의 배전이었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배전은 참배자들이 손뼉을 치면서 소원을 비는 장소입 니다. 금선사 창건기에 의하면, 1948년 정광학원 과 지역 유지들에 의해 건물 중수와 함께 금선사 교당 창립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전체 외형은 일본식 목조건축 양식을 갖추고 있으며, 내부만 사찰용도로 변경 하였습니다 창호 형태도 격자무늬로 일본의 창호 형태였는데 지역의 시민단체와 언론의 문재 재기로 유리 자동문으로 하였습니다.

▲ 무궁화 속의 금선사
▲ 무궁화 속의 금선사

배전 뒤에 있었던 신전은 사라지고 지금은 게이트볼장으로 바뀌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금신사 밖으로 나가면 , 나무아미타불이 있습니다 이 탑은 원래 황국신민서사탑이었습니다 항국신민서사란 1937년 중일전쟁이 시작 되면서 민족말살정책의 하나로 내선일체 황국신민화 등을 강요하면서 암송을 감요한 맹세문입니다

▲ 대웅전 불상
▲ 대웅전 불상

기단부는 일본의 오사카성의 성벽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그리고 탑신부는 전형적인 일본의 충혼비 모습입니다. 뒷면에 일본의 연호가 있었으나 지워졌고, 측면에 단기 4284년(1951년) 10월 3일이라고 음각되어 있습니다

이 탑 앞에 한말 호남의병장 이기손 의병장의 기적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주변에는 우리의 한을 승화시킨 국창 임방울비와 떠나가는 배의 주인공 용아 박용성의 시비도 함께 세워져 있습니다.

▲ 종무소
▲ 종무소

송정신사와 나무아미타불이 일제 잔재였음을 알리는 단죄문을 세우는 것이 늦었지만 이곳을 찾은 사람들에게 역사교육의 장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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