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태 교수 독자기고, “다름과 같음을 함께 찾자!”

김대중 정부 5년 차에 DJP연대가 깨졌다. 김 대통령은 자민련 출신 이한동 총리의 후임으로 장상 이화여대 총장을 총리에 임명했으나 국회인준을 받지 못했다. 다음에는 매일경제 신문의 장대환 사장을 임명했지만 그 역시 인준을 받지 못했다. 김 대통령은 할수 없이 인준이 가능한 인물로 무색무취의 김석수씨를 임명했고 겨우 인준을 받았다. 결국 김 대통령은 임기 5년동안 한 명도 자기와 뜻이 맞는 총리를 갖지 못했다.

▲ 최영태 교수 (자료사진)
▲ 최영태 교수 (자료사진)

여소야대 정국에서 더 생생한 비극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통과였다. 이것보다는 비중이 약하지만 대북송금특검법 통과와 이로 인한 남북관계 개선자들의 감옥행도 기억해야 할 일이다.

지금 통합당과 일부 보수층이 내품는 독기가 심상치 않다. 이들이 국회에서 과반을 차지할 경우 어떤 상황이 발생할 지 상상하고도 남는다. 문재인 정부는 아마도 식물정권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호남 예산도 온존함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결론은 자명하다. 진보진영은 이번 총선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그래야 민주주의를 온전하게 보존할 수 있고, 촛불정신을 계승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호남도 살 수 있다.

3그럼 진보 진영이 목표로 하는 승리의 기준은 무엇인가? 민주당의 과반의석 확보인가? 민주당이 제1당이 되는 것인가? 그것은 아니라고 본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통과시킬 때 민주당은 이미 독자적인 과반 확보를 사실상 포기한 거나 다름없었다. 선거법 통과 때 민주당은 민주당의 과반 확보가 아니라 범진보진영의 승리, 과반 확보를 새로운 목표로 설정했다.

갤럽과 리얼미티의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범 진보 대 범보수에 대한 지지도는 6:4 정도 비율이다. 연동형비례의석 30석을 이 기준에 맞추어 분배한다면 범진보진영은 18석 내외, 범보수진영은 12석 내외를 가져가야 한다. 지금 범진보진영이 논의해야 할 일은 자신들의 몫인 18석을 어떻게 차지할 것인가이다. 그것은 다름아니라 국민여론의 정당한 반영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그게 바로 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의 취지이자 목표였다.

비례연합정당론자들 중 일부는 통합당의 꼼수를 극복하지 못할 경우 문재인 대통령이 탄핵위기에 몰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나친 과장이다. 비례의석 몇 석을 더 가져오지 못한다고 해서 문재인 대통령이 200석 이상이 필요한 탄핵위기에 몰릴 수 있다는 주장은 솔직히 듣기에 거북하다. 그것은 야당과 똑같은 탄핵전술로서 국민을 협박하는 불순한 선거전술이다.

비례의석을 제대로 가져오지 못할 경우 국회의장을 통합당에 빼앗길 수 있다는 주장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그리고 국회의장을 통합당에 빼앗겼을 때 어떤 불행한 사태가 발생할지도 충분히 상상이 간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다른 방식으로 극복해야 한다. 개정된 선거법은 다당제를 전제로 한 것이다. 그럼 국회의장 선출방식도 당연히 바뀌어야 한다. 즉 원내 제1당이 자동적으로 국회의장을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선거를 통해 선출해야 한다. 그리하여 소수당도 국회의장 선거에서 권리를 행사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 이런 전략하에서 진보진영은 민주당의 1당 전략이 아니라 범진보의 과반 확보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비례의석문제도 이런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6. 비례연합정당 창당론을 놓고 4+1 멤버들인 민주당과 정의당.민생당이 정면 대결하고 있다. 비례연합정당 창당론자들이나 그 지지자들 중 일부는 참여를 거부하는 정의당을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있다.

그러면 안 된다. 원론적으로 말하면 정의당의 주장이 옳다. 정의당 같은 진보정당은 지금까지 당장의 이해관계보다는 원칙과 미래의 가치를 중시해 왔다. 그들이 당선 가능성이 없으면서도 당을 떠나지 않고 선거에 출마하여 온갖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원칙과 미래적 가치 대신 당장의 이익을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진보정당의 가치와 정체성을 부정 내지 얕잡아보는 행위이다. 비례연합정당 지지자들은 연합정당의 필요성을 주장하되 제발 그것에 반대하는 정당들을 적대적으로 대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진보정당과 달리 민주당은 현실을 중시하는 정당이다. 문재인 정부가 대한민국을 잘 통치하도록 의회에서 뒷받침해야 할 일차적인 책무를 짊어지고 있다. 그들의 입장에서 자기들의 몫이 되어야 할 비례의석이 오히려 통합당으로 돌아갔을 때 발생할 휴유증을 염려하고 대비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선거법을 통과시킬 때 이런 상황에 충분히 대비하지 못한 무능은 비판받아야 마땅하지만 뒤늦게나마 문제점을 보완하려는 노력까지 반역사적으로 몰아붙일 수는 없다.. 대신 상황에 충분히 대비하지 못해 선거법을 누더기로 만들어버린 지도부는 일정한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

지금 범진보정당들은 다름과 같음을 인정하면서 윈윈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첫째 , 먼저 정의당은 그들의 선택대로 독자적인 길을 가는게 합당하다고 본다. 정의당 지지자는 물론이요 민주당 지지자들 중에도 자신이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혹은 진보정당의 발전이 필요하다는데 동의하는 사람들은 지역구와 비례를 구분하여 적어도 비례투표에서만은 정의당 등 진보정당 찍기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면 좋겠다.

둘째, 민생당은 성격상 현실을 우선시하는 정당이다. 민생당은 노선에서는 민주당과 대동소이하다. 따라서 민생당은 비례연합정당에 들어가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민생당이 정의당처럼 독자노선을 고수한다면 그것대로 인정해주면 된다. 그리고 민주개혁진영에 속하지만 자신의 성향상 정의당이나 진보정당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민생당을 찍으면 된다. 특히 호남 유권자들은 그럴 필요가 있다. 호남 유권자들이 민생당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런 방식으로라도 호남에서 경쟁구도를 만들어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민생당이 좋아서가 아니라 호남정치의 활성화를 위해서 말이다.

셋째, 정의당도, 민생당도 도저히 찍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마지막 대안인 비례연합정당을 찍는다. 비례연합정당에 독자적으로 득표율 3%를 넘기 어려운 민중당ㆍ녹색당 등이 참가한다면 의미는 배가 된다. 이 경우 이들 소수 정당에 우선 순위를 배정해야 한다. 그럼에도 비례연합정당은 상수가 아닌 마지막 수단으로서이다. 그래야 진보진영의 몫도 보존하고 또 질서유지권까지 발동시키며 통과시킨 연동형선거법의 취지도 살릴 수 있다.

이렇게 다름과 같음을 인정하며 윈윈 방식의 전략적 투표를 하다보면 범민주진영은 자신들의 몫인 비례의석 수 18석 혹은 그 이상을 찾아올 수 있을 것이다.

서독에서는 1949년부터 1990년 통일될 때까지 51년 동안의 세월 중 딱 4년을 제외하고 모두 연립정부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정권의 운명은 지지도가 불과 5-10%에 불과한 자유민주당의 손아래 놀아났다. 지유민주당이 기민당을 선택하면 기민당 정부가 들어섰고, 사민당을 선택하면 사민당 정부가 들어섰다. 한국 말로 치면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는 쓸개정당(?)에 의해 정부 운명이 좌우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유럽 최강의 국가를 만들었고, 불가능할 것 같았던 통일까지 달성했다. 연합정치는 결코 비능률적이지도 않고 비도덕적이지도 않다.

비례연합정당론은 단순한 선거전술이 아니라 그 이상의 목표와 비전을 가지고 추진되어야 한다. 선거가 끝나면 민주당은 정의당, 민생당 등 범민주세력을 포괄하는 민주연립정부를 구성하라. 그게 바로 촛불정신에 충실하는 것이다. 그런 비전 하에서 정의당,민생당 등에게 비례연합정당에 참여해달라고 호소해야 한다. 목표도 비전도 없이 그냥 아쉽고 급할때만 도움을 요청하고 끝나면 내몰라라 하는 정치는 이제 그만해야 한다.

전남대학교  인문대학 사회과 교수(역사학 박사) 최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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