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 보도 이후 4개월간 추가설치된 장비 없고, ‘보안측정’만 실시

지난 6월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주미 한국 대사관을 도청했다는 사실이 공개된 이후 4개월이 지났지만, 외교부는 미국으로부터 어떠한 사실확인이나 유감표명조차 받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25일 박주선의원이 외교부로부터  제출받은 국감자료 분석 발표에 의하면 미국 중앙정보국(CIA) 전직 요원 에드워드 스노든(30)으로부터 NSA의 일급 비밀 문건을 입수한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지난 6월 30일 NSA가 한국, 일본을 포함한 38개국의 미국 주재 대사관을 '표적(target)'으로 지정하고 도청과 사이버 공격 등을 통해 정보수집 등 염탐을 했다고 보도했다.

이같은 보도가 있은 지 이틀이 지난 7월 2일 외교부는 정례브리핑을 통해 “(미국 정부에 주미 한국대사관을 도청했는지)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중에 있고 결과에 따라 필요한 경우에는 적절한 조치를 취해나갈 것(한혜진 외교부 부대변인)“이라고 했다.

하지만 외교부가 24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박주선 의원(광주 동구)에게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한국 정부는 주미 한국대사관 도청의혹과 관련해 “외교채널을 통해 다양한 레벨에서 미측에 사실관계 확인을 계속 요청”해 왔으나, “미측은 외교 채널을 통해 스노든(Snowden) 사건 관련 미국의 정보활동에 대한 기본 입장을 우리 측에 전달”하면서, “미국의 일반적인 차원에서의 정보활동에 대해 설명”했다고 답변했다. 외교부는 향후 계획으로 “한·미 양측은 필요한 경우 적절한 채널을 통해 계속 협의해 나갈 예정”이라고만 밝혔다.

쉽게 말해 우리 정부는 지난 4개월간 미국 NSA가 주미 한국대사관을 실제로 도청했는지 사실확인도 하지 못했고, 미국정부로부터 유감표명조차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반면 프랑스, 독일, 브라질 등 다른 나라에서는 미국 정부기관의 도청 활동에 대해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로랑 파비우스(Laurent Fabius) 프랑스 외무장관은 22일(현지시간) 존 케리 미 국무장관과의 조찬 만남에서 프랑스 국민을 대상으로 한 미 국가안보국(NSA)의 도청 및 정보수집은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며 명확한 해명을 요구하는 한편, 자국에 대한 도청 행위를 중단하라고 미국에 공식 요청했다.

호세 안토니오 메아데(Jose Antonio Meade) 멕시코 외무장관은 같은 날 "스파이 행위는 신뢰의 남용(an abuse of trust)이다. 멕시코는 책임 있는 이의 처벌을 주장할 것"이라면서, “우리는 미국 정부에 해명을 요구하지 않았다. 수사를 요구했다"는 강경한 입장을 표했다.

지난 9월 지우마 호세프(Dilma Rousseff) 브라질 대통령은 10월로 예정됐던 미국 국빈 방문 계획을 전격 취소하기도 했으며,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 총리 역시 지난 6월 국빈방문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국가안보국 활동에 대해 항의했다.

이같은 세계 각국의 움직임과는 달리 공식적인 항의도, 제대로 된 사실관계 파악도 하지 못한 외교부는 후속대책마저 미흡하기 짝이 없었다.

외교부가 박주선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주미 대사관이 도청됐다는 사실이 밝혀진 이후 지금까지 주미 한국대사관에 새로 설치된 보안장비는 하나도 없었으며, 고작 지난 6월 관계기관 합동으로 보안측정을 실시하는 것에 그쳤다. 한편 외교부는 현재 진행중인 조달청 계약이 완료되면, 올해 말까지 주미대사관을 포함한 10여개 공관에 전자파차폐시스템을 확대하여 설치할 계획이라고 했다.

박주선 의원은 “미국 국가안보국의 도청의혹이나 미국이 동의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대해 침묵하는 외교행태를 보면, 박근혜 정부가 내세운 ‘신뢰외교’가 유독 대미외교에 있어선 ‘벙어리외교’로 전락하고 있다.”면서, “건강한 동맹관계는 일방적 양보나 굴종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4개월 동안 실제 도청이 이뤄졌는지 여부조차 확인해 주지 않는 미국정부도 문제지만, 공식적인 항의나 사실확인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외교부는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피로 맺어진 혈맹인 미국은 우리나라에게 대단히 중요한 국가이기는 하나, 혈맹이라는 이유로 우리 재외공관에 대해 도청할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외교부는 미국 정보기관의 도청 의혹에 대해 공식적으로 항의의사를 표명하고, 조속히 도청 여부를 사실확인한 후, 추가적인 도청을 방지하기 위한 제반 대책을 신속히 실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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